2009. 2. 21. 01:00 Day by day

사랑해요. 경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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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칭은 정해져 있었다.
많은 시간은 엄마 였고, 가끔은 어머니 였다.

이런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냥 사랑해요. 는 좀 너무 뜬금없고,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어머니. 이런건 또 너무 식상해.

그렇다고 사랑해요 박경자 여사. 이건 우리 이쁜 엄마가 너무 나이들어 보이니,
조금은 버릇 없어 보여도 이렇게 선택했다.
사랑해요. 경자씨.

30년이 다 되가도록 편하게 쉬기는 커녕 매일매일 삶의 전투속에 있으면서 우리 엄마로 까지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좀 쉬고, 엄마만 하라고 했는데도 도무지 듣지를 않는다.

돈 좀 더 많이 벌어서 한달에 이백만원씩 가져다 주면 우리 엄마만 하려나.

2.
예전에 수능시험이 끝나고 집에서 하릴없이 놀고 있을 때, 편지 한통을 받았다.
이제 곧 고등학교 졸업이니, 아쉬운 마음에 누가 고백이라도 하려나 보다. 라는 생각에 발신자를 봤다.
상대가 여자는 맞긴 한데, 아무래도 친구는 아니었다.
세상에. 엄마였다.

편지를 읽고 소리내서 엉엉 울었다.
방에서 엄마 껴안고 운적도 있는거 같다.

이게 벌써 팔년 전이다.

그 때는 되게 많이 슬픈거 같았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거 보면 참 별거 아니었나보다.
이담에 더 커서 자식 낳으면 이 얘기 해줘야 겠다. 수능 볼 때 즈음에.

3.
학교 졸업하고, 취직 못하고 놀고 있을 때 아빠가 멋쩍은듯 하며 십만원짜리 수표를 내밀었다.
안받는다 두어번 거절하고 받았다. 아빠도 참.
속으로 울면서 내방으로 들어왔다.
내 자신을 진지하게 원망했던건 아마 이때가 처음 아니었나 싶다.

4.
반지를 샀다.
원래 없었는지, 우리들 키우면서 너무 힘들어 어디 잠깐 맡겼는지, 아니면 있는데도 안끼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유야 어쨌든 결혼반지를 보지 못했다.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어야 하는 손가락에 엄한 반지가 껴있는게 싫었다.
솔직히 슬펐다.

다 큰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 부모 손가락을 아직까지 비워놓다니.
그래서 반지를 샀다. 내 돈 벌기 시작한지 일년만에 반지를 샀다. 몇 백만원 짜리 반지도 아닌데, 뭐 일년이나 걸렸는지, 속으로는 내가 밉지만 겉으로는 기쁘다.

누나 결혼식장에서 두분 손가락에 끼워진 똑같은 모양의 금반짝이가 있으면 그래도 멋지겠다 생각했다.
엄마나 아빠나 일하는데 방해되서 잘 끼지 않더라도 겉으로는 속상하지 말아야지.

5.
사랑해요. 경자씨 그리고 세상서 제일로 멋지고 잘생긴 우리 아빠. 오규환씨.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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