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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영화 녹차의 맛(味, The Taste Of Tea, 2004) 에 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수 도 있지만, 영화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기 싫다 하시는 분들 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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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곳에 들어가기 전 이었던 것 같다. 내가 철봉 이라는 놀이기구, 또는 운동기구를 접한 때가. 1990년? 1989년? 이 시절 시골에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논바닥을 뛰놀며 분유통을 빙빙돌리는 쥐불놀이, 그 시절 우리들이 축구라고 부르던 바람 빠진 공으로 하는 공놀이가 전부였다. 간혹 넙적한 돌멩이들을 모아서 비석치기 라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재미난 놀이도 즐기곤 했다. 이런 것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즐겨야 흥이 나는 놀이었고, 놀 친구가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근처 초등학교에 있는 놀이터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아마 이 때였던 것 같다. 내가 철봉 오르기에 성공했던 때가.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기차로 갈아탄 뒤에야 갈 수 있는 집. 이런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재미있게 우려냈다. 평범한 시골마을에 사는 평범한 가족은 저마다 나름대로 방식으로 살아간다.

한창 사춘기인 아들은 사춘기학생 답게 여자문제로 고민하고, 어린 막내딸은 커다란 자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가정주부인 엄마는 애니메이션 작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평범함과 별로 평범하지 않음이 섞여서 단순함 속에 재미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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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하다.


사춘기 아들 하지메는 너무나 평범하다. 아니, 이 영화 속 에서 그나마 제일 평범하다.

말 한마디 못해본 짝사랑 여학생이 전학을 가는데, 뭐라 한마디 말도 못하는 이 소심함. 그리고 어차피 전학을 가지 않았어도, '말 한마디 안 했을 거다.' 라고 스스로 자신을 위로 하는 모습. 대다수의 중고생의 모습이다. 머리가 뚤리는 듯한 이런 상처를 받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이런 맹세가 어디 맹세인가. 새로 전학온 여학생 앞에서 금새 깨져 버리고 만다. 말 대신 우산 하나 던져준 것 만으로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이 소년의 모습은 왠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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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한 모습을


귀여운 막내 동생 사치코. 말 못할 사치코의 고민은 바로 자신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 문제는 노려보는 사치코가 자신보다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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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함께있는 사치코


삼촌에게 우연히 전해들은 환영없애기 방법을 성공시키기 위해 사치코는 필사적이다. 그 방법이라 함은 바로 철봉 거꾸로 오르기. 수도 없이 연습한 끝에 거꾸로 오르기에 성공한 사치코는 무덤덤한 듯 보인다. 마치 자신이 뭘 한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무덤덤 한 듯 보이지만, 사치코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다. 아니, 하늘을 날다 못해, 저기 우주 멀리까지 여행하고 돌아온 기분이다. 아무렇지 않게 한번 더 거꾸로 오르기를 성공시키고, 웃음이 사라졌던 사치코에게 드디어 웃음이 돌아온다. 이로써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러웠던 사치코는 드디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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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녹차의 맛 이라는 영화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캐릭터가 있는데, 이는 바로 할아버지이다. 한없이 이상한 행동을 보여주며, 엔카를 흥얼거리는 할아버지, 결국엔 야마송 이라는 밀리언셀러의 가.능.성.이 있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노래를 녹음해버린다. 이 영화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를 대라고 하면 단연코 야마송 신이다.

야마송이 주는 것은 단지 재미뿐이 아니다. 영화를 본 뒤에 다시 한번 이 야마송 화면을 보게 된다면 알 수 없는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치매에 걸린듯한 할아버지는 단지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즐겁게 살아오신만큼 가실 때도 별다른 고통 없이 가신 듯 하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애니북 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남기고.


많은 곳에 향긋한 재미가 숨어있다. 끝까지 보고 나면, 담백하고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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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잘 우려낸 녹차 한잔 마신 것 처럼.

Posted by onion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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