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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 적어도 올해 안에 바뀌지 않을 숫자의 주인공은, 내가 사는 곳. 바로 우리 동네의 택시 대수이다. 동네택시는 거의 타지 않는다. 미터기도 켜지 않고, (승객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비합리적인 요금을 받는다. 목적지를 말하면 그곳까지 가는 요금의 배를 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손님을 태울 수 없으니, 타고 가는 사람이 그 몫까지 부담하라는 것이다. 혹시나 운이 좋아 손님을 태워 돌아와도 택시비를 절대 깎아주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났는데, 최근 동네택시를 타 본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도 이런 정책을 고수하는지는 알 수 없다.


"용강동이요." 그리고 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드님 이신가 봐요? 멋있어요. 자랑스러우시겠네요." 룸미러 아래 달려있는 가족사진을 보고 가식적인 웃음과 함께 묻는다. 거짓말이다. 실은 사진 속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20분간 어색한 침묵을 참을 수 없어서 억지로 꺼낸 말이다. 육군 장교 복을 잘 차려 입은 남자를 칭찬하니, 아까의 그 조용한 모습은 마치 연기였다는 듯이 신나서 말을 쏟아내신다.


택시기사 아저씨와 말이 통하게 되면, 그건 아저씨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난 아저씨는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난 기사 아저씨에게 일부러 말을 시켰었다. 그 때는 두 세 마디 주고 받고 단절 되었던 대화가, 이제는 목적지 도착까지 끊기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가도 난 제자리 일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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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건달이나, 정신 나간 아가씨, 사창가의 아줌마, 폭력적인 남성, 생일 맞은 아가씨, 한국인이 아닌 사람, 술 취한 아저씨, 쉴 새 없이 불평하는 사람들 모두, 택시기사 앞에선 거리낌이 없다. 처음 보는 타인에게 하루 종일 자신의 뒤통수를 노출하고 있는 그 들. 그 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뒤통수를 보이고도 그 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거리낌 없는 모습 때문 일거다.

어디가 연출이고, 어디가 실제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영화 보는 내내 불편했을 뿐이다. 이것은 단지 내가 20대 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텐데. 언제까지 꿈만 안고 살 수 있을까. 막노동판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면서, 그래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소주 한 병을 몸에 담고, 책이며, 신문지이며 그림을 그린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100호짜리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의 꿈. 마침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때 그는 울고 있을까?


한 남자가 어두운 밤에 미술관에 숨어들어와 간절히 기도를 해요. 이 그림 속에 들어가게 해주세요. 날이 밝고, 그 남자는 사라져있고, 그 남자가 있던 자리에는 한 남자가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그림이 있었어요. 어두워서 그림이 바뀐 것을 못 본거죠.

- 택시블루스


동화 속의 그는 꿈을 이뤘지만, 현실에서보다 더 나아진 것은 없다. 우리네 꿈은 이렇다.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봤자 남는 것은 없다. 심지어 그 꿈을 이루었다고 해도 말이다. 아니 오히려 꿈은 그저 꿈일 때가 가장 낫다. 꿈을 이룬다는 건 마치 첫 섹스 후의 공허함과 같다. 진정 아름답고 즐거운 건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이다. 과정이 힘들어도, 꿈을 이루면 나아지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눈물이 흘렀다. 택시 안에서는 내 현재의 모습과, 내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속에 내가 이루고 싶은 모습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펐다.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들이 택시를 타는 우리 서민의 모습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자. 우리가 삶을 이끌든, 삶이 우리를 이끌든, 어떻게든 세상은 돌아가게 되어있다.

Posted by onion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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